1877년(고종 14)에 부임한 이용준(李容) 부사는 광한루(廣寒樓)가 오래되어 퇴락이 심한데다 누각이 북쪽으로 기울어가자 정사(政事)를 돌보면서도 온통 생각은 어떻게 하면 기울어가는 광한루를 바로 잡을 것이지 방도(道)를 찾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부사는 육방(六方)을 모아 특명으로 남원부에 실력 있는 목수(手)를 불러 모으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참석한 20여명의 목수들에게 기울어가는 광한루를 바로 잡기 위해 자문을 구했지만 의견이 분분하여 새로 짓지 않으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수지면(水面) 고평리 里) 말골에 사는 추(秋)씨 성(姓)을 가진 목수(手)가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에게 묘안이 있습니다. 광한루가 북쪽으로 기우는 것은 기초가 내려앉음이 분명한데 이거 대한 누각을 뜯고 새로 신축한다는 것은 막대한 공사비가 낭비되니 공사비도 절감하고 누의 외관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면서도 기울어지는 것을 바로 잡을 묘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울어지는 누의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세우는 것입니다. 계단을 세우되 본관과 같은 큰 기둥을 사용하면 기울음을 막을 수 있고 외관도 더 화려할 것입니다."
추대목의 묘안(案)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감탄하며 추 대목의 제안대로 북쪽에 기둥을 세우고 누(樓)에 오르내리는 계단을 설치하여 광한루가 북쪽으로 기울어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이것이 광한루에 설치된 월랑(月)이다. 보편적으로 월랑은 행각(閣)이라고 하여 궁궐이나 사찰의 정당(正堂) 앞이나 좌·우, 옆에 달아 지은 것으로 공간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본 건물의 보조적 역할을 한다. 추 대목은 이러한 행각의 기능을 변형시키는 기발한 착상으로 월랑을 설치함으로서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한층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관과 같은 기능을 설치한 시초가 되었다.
월랑(月)은 광한루 본루를 오르는 출입구로 각별히 의 장성을 갖추고 화려한 장식들이 돋보이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월랑의 가구는 북측에서부터 세워진 세열의 기둥이 단 차이를 두고 차례로 높아지지만 각 칸은 모두 3량가로 구성되어 있다. 대공(臺工)은 2열과 3열 대들보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판대공과 화반대공으로서 형태와 의장에는 차이가 있다. 본루로 연결되는 월랑은 3단의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 위에 놓인 디딤돌을 딛고 올라서면 첫째 단은 목조 2단이며 길게 수평으로 처리하였고 셋째 칸에는 세단의 목조계단을 설치하였다. 월랑은 순차적이고 평면적 구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길게 보이고 공간적 상승감을 높이는 효과를 준다.
월랑을 받치고 있는 6개의 기둥은 3열로 단차를 두고 세워져 있으며 모두 나무로 만든 두리기둥이다.
장여는 모두 도리 아랫변에 맞추어 장여 상면을 둥글게 파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월랑 우주 왕지부분에서는 장여 뺄목 끝부분을 당초(唐草)나 하엽(荷葉)형태로 조각하여 아랫부분의 연화(꽃)조각과 어울리게 하였다. 또한 기둥 사이 대들보 위와 광한루 본루와 연결칸에 대공을 설치해 놓았는데 판대에 꽃과 넝쿨을 초각한 화반 대공이다.

공포는 초익공과 이익공 두 가지의 익공재가 사용되었는데 초익공은 본루와 익루에서 처럼 외부 쪽과 내부 쪽이 별개의 부재로 되어 있다. 이익공의 쇠서는 연화(꽃)와 연봉으로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이익공 쇠서와 보머리 사이에는 봉두(鳳頭)를 조각하여 끼웠다. 또한 북쪽 1열의 귀공포 두 곳에는 귀한대 상부 외부에 용두(龍頭)를 조각하여 끼웠으며 좌측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황룡을 우측에 청룡을 배치하였다.
기둥과 기둥사이 창방위에는 화반이 한 개씩 설치되어 있는데 특이하게 거북과 토끼 그리고 코끼리를 형상을 조각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토끼와 자라는 《수궁가》, 《별주부전》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구토설화(龜兎說話)의 풍자적 교훈을 담고 있는대 표적 설화이다. 자라는 죽음을 무릅쓰고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로 나오는 충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반면 토끼는 번득이는 기지와 꾀로 용궁을 탈출한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용궁은 옥황상제가 사는 월궁과는 반대로 바다세계의 주관하는 용왕의 해중신선(海神仙) 사상이 담겨있다. 창방 위에 코끼리는 좌측에 암 코끼리를 우측에 숫 코끼리를 배치하였는데 코끼리는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북쪽을 기울어 가는 본루를 더 이상 기울지 못하도록 지상에서 가장 힘센 코끼리를 조각하여 받치게 하는 비보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코끼리는 예부터 길상(吉祥)으로 운수가 좋은 징조로 여겨왔다. 월랑에 조각된 토끼와 코끼리는 암수의 구별을 두었는데 이는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한 것으로 음양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며 물과 불, 해와 달을 의미하는데 우주의 삼라만상을 함축한 것이라 하겠다. 광한루에 오르는 것은 천상의 달나라 궁전에 오르는 것과 같으니 좋은 경치를 감상하는 월궁에 오른 것은 결국 신선 세계를 오르는 것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루와 연결되는 월랑의 세 번째 칸 측면에는 기둥사이 중인방 아래에 판벽을 구성하고 중방과 창방사이에 홍살을 설치하였는데 중앙에는 태극무늬가 그려진 삼지창을 끼워 의장성을 배려하였다.
보편적으로 홍살(紅箭)은 능원·묘와 향교, 서원, 사당 또 는 충신, 열녀, 효자를 배출한 집이나 정각에 설치하는데
신성한 공간으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며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살은 삼국시대 초기에서부터 나타나 조선시대까지 이어졌고 유교를 근본으로 여긴 조선시대에는 충효열의 상징으로 여겼다.
또 홍살의 붉은색이나 태극 문양의 삼지창은 잡귀 등 나쁜 기운을 막아 물리치는 의미를 지니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왕릉에는 현세와 사후세계의 경계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월랑에 홍살은 인간세계에서 천상의 신선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신성한 문을 상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월랑의 마루는 북측 첫째와 둘째 칸은 우물마루로 그리고 본루와 연결되는 셋째 칸은 우물마루와 장마루로 반씩 구성되어 있다
또한 월랑의 첫째 칸, 둘째 칸 측면에 평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월랑의 지붕은 전면에 팔작지붕 형식을 하고 뒤로 두 칸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꾸몄다. 지붕의 다양한 형태의 변화는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본루를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줌과 동시에 광한루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해준다.
출처 : 김주완, 『하늘과 달, 그리고 사랑담긴 정원 남원광한루원』72p. (남원문화원 발행)